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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사건

'꼬꼬무' 씨랜드 화재 참사 사건

 

 

 

지난 9일 오후 10시 30분에

방송되는 SBS 교양 프로그램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이하 '꼬꼬무')에서

장트리오(장도연X장성규X장현성)가

들려줄 여덟 번째 '그날' 이야기는

장트리오와 게스트들을 눈물과 분노로

포발하게 만든 '마지막 여름캠프,

씨랜드 화재 참사'였습니다.

 

 

 

 

씨랜드 화재 참사 비극적인

면면을 들여봤는데요,

때문에 씨랜드 화재 사고가

다시 한번 재조명 됬습니다.

 

1999년 6월 새벽 경기도 화성군(현 화성시)

서신면 백미리에 있는 청소년 수련시설인

놀이동산 씨랜드 청소년수련원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취침중이던 유치원생 19명과

인솔교사 및 강사 4명 등 총 23명이 숨지고

6명이 부상당하는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화재당시 방에서 취침을 하고있던

다른 유치원생 소망유치원생,

안양 예그린유치원생, 서울 공릉미술학원생,

부천 열린유치원생, 화성 마도초등학교 학생 등

497명의 학생들과 인솔교사 47명 등

총 544명이 있었습니다.

 

또한 화재 발생 당시 화재경보기와

소화기는 작동하지 않은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화재 발생 후 1시간이 지난

새벽 1시 40분경 신고를 접수한 소방서에서는

화재사고 현장에 소방차 20여 대와 소방관 70여 명,

경찰 250여 명 등을 출동시켜

화재진화와 인명구조 작업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이미 골든타임이 한참 지났고,

소방서가 현장으로부터 약70km나 떨어진데다

화재가 발생하면서 생긴 유독가스와

건물 붕괴위험 등 진화작업에 어려움을 보였습니다.

 

화재는 가장 처음 수련원 3층 C동 301호에서 일어나

순식간에 건물 전체로 옮겨붙은 것으로 보였습니다.

 

화재 원인으로는 방 안에 피워둔 모기향이

옷에 옮겨붙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정밀검식을 했습니다.

 

 

 

 

이러한 끔찍한 일이 일어난

사건의 당사자 아버지인 이상학씨는

방송에 출연해 말하기 힘든 이야기들을 꺼냈는데요.

 

이상학씨의 딸 세라는 햇님유치원생으로

301호에 머물고 있었다고 합니다.

 

1999년 6월 30일 새벽 다급한 목소리로

당장 텔레비전을 켜보라는

막내 처제의 전화를 받았다고합니다.

 

 

 

 

TV화면 속 화마에 휩싸인 건물은

이상학씨의 딸 세라(7세)가

전날 생애 첫 캠프를 떠난 바로 그곳이였습니다.

 

아비규환이 된 수련원 숙소엔 무려

550명의 사람들이 묵고 있었고,

대부분은 세라 또래의 5~7세의

아이들이였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2,3층만 객실로 사용하던 씨랜드는

가운데 긴 복도를 두고 양쪽으로

총 26개의 방이 늘어져있었습니다.

 

 

밤 9시가 넘어 방으로 온 아이들은

그대로 잠에 들었고 건물에서는 불이 났습니다.

 

 

 

 

화재를 가장 먼저 감지한 사람은

이 날 사전 답사 차 방문한

태권도 도장의 송영규 관장있는데요.

그는 새벽 1시 방문을 열고 나와

형광등 주위에 하얀 연기를 발견했다고합니다.

 

본능적으로 화재를 직감한 송 관장은

화재경보기를 눌렀지만 화재경보기는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그는 다급히 불이야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고

방에서 자고 있던 선생님들이 뛰쳐나왔습니다.

 

그리고 송 관장과 선생님들은 급히 아이들을 대피시켰습니다.

 

 

 

 

화재 진압 후, 잿더미로 변해버린 숙소 건물에서는

아이들의 시신들이 하나, 둘 발견됐습니다.

 

아이들은 끝내 건물을 빠져나오지 못했고,

유가족들은 종잇장처럼 구겨진 건물 앞에서

망연자실 할 말을 잃었다고합니다.

 

작동하지 않은 화재경보와 소화기,

신고 후 20분이 지나서야 도착한 소방차와

수많은 퍼즐의 조각들이 참사를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 희생된 아이들 곁에

선생님이 없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유가족들의 슬픔은 분노로 변해버렸습니다.

 

아이들을 지켜야할 선생님들은

불이 나던 순간 어디서 뭘 하고 있었던 걸까요?

믿기지 않는 참혹한 진실에 유가족들의 분노는

점점 커져갔고, 이어진 무력감과 비통함에

결국엔 이 나라를 떠나겠다는

결심까지 하게됬다고 합니다.

 

 

 

 

이상혁씨는 이후 사망자 명단에서

세라의 이름을 발견했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으로 달려가

세라의 시신을 보려고 했지만

국과수 측은 "딸을 알아보지 못할 것"이라며 그를 말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씨는 딸의 시신을 확인하기로 했고,

한눈에 딸을 알아봤습니다.

세라의 다리에 붙어 있는

'세알러문 스티커' 때문이였다고합니다.

 

 

 

 

이씨는 "사망자 명단에서 세라의 이름을 봤을 때는

뭔가 잘못됐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떄는 막 하늘이 무너지고, 뭘 어떻게 해야 될지

진짜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라며

 

"아이가 다쳤어도 살아만 있어라

이건 현실이 아닐 거다.

우리 아이만 보게 해달라고

진짜 빌었다."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이 날 녹화장에서 장성규의 이야기 친구

백지영은 엄마의 마음을 대변한 리액션으로

녹화 내내 터져 나오는 눈물을 멈추지 못해

녹화 중단 사태까지 발생했고,

 

장현성의 이야기 친구 타블로는

묵묵히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가

묵직한 메시지 한방을 던져 장현성을 울컥하게 만들었습니다.

 

장도연의 이야기 친구로는

가수 비비가 출연해 이야기를 경청하다가

일순간 분노에 치를 떨고,

오열을 멈추지 못해서 제작인의

마음까지 먹먹하게 만들었습니다.

 

다시는 이런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게하기위해

수련회의 철저한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